• [전문가 비평] 윤동주 서시 -김영희(연극평론가, 경성대 창의인재대)

    2015-05-31 오후 4: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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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관리자

  • 고향과 유년에 대한 그리움의 연극 -윤동주 서시(이채경 작/연출, 연희단거리패, 한결아트홀 3.24-4.10) 김영희(연극평론가, 경성대 창의인재대) 후코오카에 윤동주를 추억하는 시 읽기 모임이 있다는 말을 전해 처음 전해 들었을 때, 나는 놀랐다. 허나 윤동주에게서 저항의 키워드를 지워 버리고 자기 성찰적이고 내성적이며 또한 그리움의 정서를 떠올린다면 이해되는 일이다. 특히 ‘그리움’이란 정서는 인간 고유의 보편적인 정서이니 일본인들이 그의 시를 애독한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없다. 4월, 벚꽃이 떨어지는 날, 거제역 근처 한결아트홀에서 창작 뮤지컬 <서시>가 공연되었다. 연출가 이채경은 <챗 온 러브>, <산 채로 말린>, <한여름밤의 꿈>, <미스 쥴리>, <샘>, <로미오와 쥴리엣 발코니 장면을 연습하다> 등을 통해 일찍이 실험적인 창작뮤지컬을 선보여 왔다. <서시> 또한 그 연장선에 놓여 있다. 시의 영상화, 시와 노래, 음악의 조화, 단일색 의상의 상징성, 환각을 드러내는 비논리적 설정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서시>는 이러한 실험적 기법보다는 극단적 인물 대립을 통한 주제의 선명함이 돋보인다. 대립, 갈등을 통해 성격을 형상화하고 주제를 구현하는 것은 연극의 전통적인 드라마트루기다. 연출가는 작품 소개에서 <서시>는 ‘야만적 역사에 희생되는 개인의 영혼에 대한 이야기’라고 밝혔는데, 연출의도 또한 극단적 대립을 통해 윤동주의 순수한 영혼이 훼손되고 말살되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비극성에 초점이 맞추어진 것이다. 일본인 의사, 간호사 요코, 그리고 국적불명의 이름도 없는 사내의 등장으로 연극은 시작된다. 사내는 무대 전면으로 서 있는 침대에 뒤틀린 모습으로 누워 있다. 일본인 의사는 사내에게 해수 투입의 생체 실험을 하는 중이다. 실제 일본은 전쟁 막바지에 수혈할 피가 모자라자 식염수나 해수가 피를 대신할 수 있는지를 마루타를 통해 실험했는데, 윤동주의 사촌인 송몽규의 증언에 의하면 윤동주는 감옥에서 매일 알 수 없는 주사를 맞았다고 한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에서 차용한 장면으로 연극이 시작됨으로써 <서시>가 일제에 의한 윤동주의 비참한 죽음을 소재로 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일본인 의사는 간호사 요코에게 생체실험의 의의를 과학의 ‘호기심’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해수투입량에 따라 변하는 사내의 체온을 정확히 체크할 것을 명령한다. 일본인 의사가 퇴장하고 난 뒤 요코는 사내가 번역하다 만 원고 뭉치를 발견하게 되고 사내-윤동주의 환각을 보게 된다. 요코는 의사에게 사내의 원고와 환각을 보고하지만 의사는 정량화되지 않는, 어쩌면 미묘한, 인간적 요소인 원고 뭉치와 환각을 무시해 버린다. 사내-윤동주를 억압하는 것, 그것은 과학의 발전을 맹신한 문명이다. 문명에 의해 말살되는 개인의 순수한 영혼. 이로써 <서시>는 역사적 증언이나 폭로에 매몰되지 않고 보다 확장된 주제로 비상한다. 요코는 사내가 남긴 원고 뭉치를 읽으며, 사내의 환각에 빠져든다. 환각의 과정은 스크린에 나타나는 시를 노래로 부름으로써 시작된다. 연극의 전반부에서는 ‘조개껍질’, ‘봄’, ‘병아리’, ‘산골물’ 등 동시나 동요적 성격이 짙은 시들을 노래 부른다. 요코가 부르기도 하고 윤동주가 부르기도 한다. 무릇 노래가 영혼의 형식이라는 말을 생각할 때 요코와 윤동주의 같이 노래 부르기는 호기심의 세계에 있던 요코가 윤동주가 보이는 그리움의 세계에 빠져든다는 것이다. 윤동주가 지향하는 그리움은 여동생 혜원의 등장으로 최고조에 이른다. 혜원은 바닥에 그림을 그리며 놀기도 하고 함경도 사투리로 오빠에게 말을 걸기도 하고 시를 노래 부르기도 한다. 자아와 세계가 분리되지 않는 동심의 세계, 어떤 힘에도 굴복되지 않는 견고한 세계, 혜원의 세계는 우리가 잃어버린 세계이다. 이러한 장면들을 통해 윤동주의 시가 간직한 정서를 우리는 알게 된다. 동심과 향수이다. 여동생 혜원은 동심과 향수의 상징이다. 윤동주의 환각을 통해 나타난 혜원은 함경도 사투리를 사용하는데 그것은 그리움의 언어다. 혜원의 순수한 몸짓은 손상되지 않은 영혼의 표상이다. 요코는 윤동주의 원고 뭉치를 읽으며, 아니 노래하며 그것은 결국 ‘그리움’이라는 것을 알아차린다. 몸이 뒤틀리는 고통 속에서도 윤동주는 순수했던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며, 용정 명동촌에 있는 가족을 그리워한 것이다. 요코는 윤동주의 원고 뭉치를 읽어면서 윤동주의 그리움을 내면화시킨다. 달리 말하면 윤동주의 정서가 요코에 투영돼 나타난 것이다. 그래서 요코는 일본인 의사에게 ‘그리움’을 아느냐고 묻기에 이른다. 그것은 물질적인 세계에 대한 반성과 새로운 세계에 대한 발견의 말이다. 그것은 윤동주를 대신해서, 개인의 영혼을 말살하려 드는 ‘야만적 역사’에 대한 항변이다. 연극의 후반부에는 ‘자화상’, ‘또 다른 고향’, ‘쉽게 씌여진 시’, ‘서시’, ‘참회록’ 등을 노래로 부른다. 이러한 시들에서 우리는 ‘야만적 역사’ 속에서 자신의 순수한 영혼을 지켜 내기 위한 윤동주의 성찰적 고뇌를 알 수 있다. 특히 참회록은 죽어가는 윤동주를 끌어안은 요코가 눈물로 부른다. 요코의 노래와 눈물은 야만적 문명의 희생양이 된 순결한 영혼에 대한 진혼일 것이다. <서시>는 결국 야만적이고 폭력적이며 비인간적인 문명이 한 순수한 영혼을 어떻게 말살하려 드는지를 보여주는 연극이며, 그러한 현실 속에서 동심과 그리움, 문학에의 열정을 지켜 내고자 했던 한 인간의 처절한 몸부림에 대한 기록이다. 우리는 <서시>를 통해 현대 문명 속에서 지켜내야 할 가치 있는 인간성이 무엇인지를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 4월 자주 비가 내린다. 고통으로 그리워하지만 만날 수 없는 이들의 눈물인가. 다음은 윤동주의 <편지>다. 죽은 누이를 그리워하며 쓴 시다. 연극 공연 내 보았던 윤동주의 아름다운 시에 한편 더 보탠다. 누나 이 겨울에도 눈이 왔습니다 흰 봉투에 눈을 한줌 넣고 우표도 붙이지 말고 말쑥하게 그대로 부칠까요 누나가 계신 나라엔 눈이 안 온다기에 -윤동주, <편지>(1936년 12월 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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